책얘기 이전에 영화 <쇼생크탈출>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쇼생크탈출>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영화다. IMDB.COM 에서 유저평점 1위를 수년째 고수하고 있다. 참고로 2위와 3위는 대부시리즈, 4위는 다크나이트, 5위는 쉰들러리스트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를 꼽으라면 이영화를 꼽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1994년에 나온 이 영화는 개봉당시에도 호평을 받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영화다.
이런 대단한 영화의 원작을 2016년에 와서야 읽었다. 작가는 스티븐 킹이다. 실은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는 중에 킹의 소설이 뭐가 있나 찾아보다가 쇼생크탈출의 원작자가 스티븐킹 임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킹이 쇼생크 탈출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니. 그는 진짜 천재였다.
소설은 레드의 독백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난다. 레드는 20세때 생명보험 때문에 아내를 죽이려다 이웃가족 까지 총 3명을 살인한 범죄로 종신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시작한다. 교도소에서 40여년간 있었다. 레드는 외부의 물건을 밀반입 하여 죄수들에게 제공했다. 예를들면 포르노 책, 핸드버저, 초코렛 등 따위였다. 쇼생크의 백화점인 셈이었다. 레드에게 세상은 곧 쇼생크였다.
앤디 듀프레인은 잘나가는 은행가였다. 그는 은행가답게 냉철하며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아니 이성적이고 냉철했기 때문에 잘 나가는 은행가가 되었을 것이다. 듀프레인의 인생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를 나락으로 빠트린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사랑한 아내였다. 아내와 결혼한 것이 유일한 죄였다. 아내는 젊은 골퍼와 바람이 났다. 둘은 바람을 피던 현장에서 동시에 살해당한다. 당해도 싸지. 물론 듀프레인이 죽인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이성적이며 냉철한 인간인데 자기 손에 피를 묻히겠나? 그도 아내의 외도사실을 알고 총을사서 자살까지 생각했다. 결국 듀프레인은 누명을 쓴채로 살해죄로 쇼생크로 들어간다.
쇼생크에서 탈출한 뒤 앤디는 레드에게 편지를 쓴다. 희망은 좋은 것이라고. 희망이 좋은 것인지 누가 모르나? 그런데 왜 그 편지의 ‘희망’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울리게 할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줬으면 바랬던 거 아닐까? 꼴배기 싫고 잘나신 정치인, 사업가, 장관 따위 공무원들이 희망이란 좋은 것입니다 얘기하면 또 뭔 수작을 부리려는 구나 생각이 든다. 앤디의 편지의 희망은 그것과는 다름을 느낀다. 잘나신 분들의 희망이란 세속적인 성공, 명예 부 따위 일 것이다. 앤디의 희망은 내 안에 있는 살아있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이란 사람마다 다르 겠지만 꿈, 가치관, 이상정도 일 것이다. 편지에서 희망을 언급 할때 가슴속의 그 무엇이 ‘나’ 아직 살아있다며 신호를 보내온다. 인생은 ‘나’ 때문에 살만한 거라고 말한다.
소설보다 영화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 올려지는 부분이 많다. 성경책이 그 중 하나다. 앤디가 탈출이후 장면에서 노튼 소장이 앤디의 성격책을 뒤진다. 구원은 여기(성경책)있었다고 쓰인 부분이 나오고, 책 내부를 도려내어 락해머를 보관한 공간이 비춰진다. 통쾌하면서 웃겼다. 성경책에 락해머 테두리를 도려내고 있었을 앤디를 생각해보라. 그것도 깔끔하게 오차없이 도려냈다. 앤디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완벽하게 해냈을 것이다. 교도소는 참 우리나라 군대같다. 군대에 가면 참 쓸데없는 데에 섬세해지기 때문이다. 앤디가 짝대기 네개 전투복입고 책성경 도려내는 장면이 상상된다.
<쇼생크탈출>은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매력이 있다. 둘다 섭렵했을 때 재미의 시너지 효과가 있다. 소설을 읽을 때 영화의 한장면이 떠오르고 비교하면서 즐길 수 있다. 굳이 소설과 영화 중 어느 것이 더 좋읁 고르라면, 영화가 더 좋았다. 영화를 먼저 보기도 했고 수십번은 봤기 때문이다. 영화의 장면마다 나오는 복선과 의미가 보면 볼수록 더욱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설이 주는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읽고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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